[-지상 최고의 아빠] 가식이란 이름의 옷을 벗어라 - 스포 다수
문학과 예술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내면속에 담고 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런 내면의 주제를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느냐 아니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내적사상을 이해해야만 하느냐에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그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것입니다.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영화도 마찬가지일것이라고 봅니다.
간혹 나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평이 좋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평들이 좋아서, '이 영화 참 좋군~' 하며 스스로 기존 영화에 대한 평들이 나의 생각인 것처럼
그대로 받아 들이며 그런 영화들을 명작의 범주에 끼워 넣고 있는 경우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영화에 대해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서 다 이해하는 척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이겠죠.
그런 가식적인 모습들을 버리라고 나의 감정에 돌직구처럼 호소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지상 최고의 아빠>라는 영화입니다.
맨 처음 <지상 최고의 아빠>라는 타이틀과 <로빈 윌리암스>를 봤을 땐 위트 넘치고 가슴 훈훈한 가족영화이려니
생각됐습니다.
<지상 최고의 아빠> 라는 단어와 <로빈 윌리암스>라는 이름이 훈훈한 감정을 일으켰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따뜻한 가족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시골 중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며 베스트 셀러 작가를 꿈꾸지만 매번 퇴짜를 맞고 학교에서 조차 인기 없는 강의로
퇴출 될 위기에 처해있는 랜스 클라이튼.
그 학교에서 거의 왕따 수준의 문제아 카일.
둘은 부자지간 입니다.
(컴터 화면을 보시라 포르노 사이트..ㅋ.. 문제아 카일)
카일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아이입니다. 15세 청소년기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과 욕구.
그리고 감정 표현.
그와 반대로 아버지인 랜스는 항상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감추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질투심에 화가 나도 괜찮은 척.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 영화도 사랑하는 여자가 싫어하기 때문에 보지 않고 양보를 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부자지간이다 보니 항상 티격태격합니다.
항상 반항적이고 성적 호기심과 게임에만 열중하며 아버지를 멍청이라 얘기하는 아들 카일을 랜스는 어찌해야
좋을 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날 카일은 자신의 방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약간은 변태기질이 있던 성욕때문에...
멍청이에 문제아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 아버지 랜스는 오열하고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 죽은 아들이 혹여 세상의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였는지,
아니면 아버지 자신의 지위와 위선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맞이한 아들의 사체를 추스려서 자살로 위장합니다.
그런다음 세상과 학교에 대한 비판이 담긴 유서를 위조하여 아들의 주머니에 끼워 넣습니다.
어쩌다 그가 위조한 유서가 발견되어 학교 신문에 실리게 되고,
유서를 읽은 학교 전체는 그동안 카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후회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카일을 재조명하게 되고, 죽은 카일은 학교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점점 풍선 부풀리듯 더욱 더 커지게 되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랜스가 썼던 이야기가
카일의 일기가 되어 학교 전체 그리고 미국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들이란 그런 드라마를 바라고 드라마적인 상황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보잘것 없는 작가지망생 늙은 랜스의 이야기가 요절한 천재 작가의 탈을 썼을 때에는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TV방송에서 랜스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감정을 표출 합니다.
사실 웃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멍청이라 놀림받고 저능아라 평가 받던 아들이 천재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또는 자신의 거짓과 가식으로 말미암아 깊은 철학적 고찰을 느끼는 것처럼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을 비웃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카일에게 헌정하는 도서관을 만들고 그 도서관 내부에는 살아생전 멍청이.왕따 취급 받던 아들에 대한
가식적인 - 혹은 진실이라고 가식적으로 믿고 있던 -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는 도서관 헌정식에서 또 웃습니다. 출판업자와 책 계약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도 계속 웃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상에 올라 진실을 말하게 됩니다.
그가 웃는 의미는 그 상황들이 재미있는 것이 겠지요.
자신이 만들어낸 아들의 이야기에 철학적 고찰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의 그런 가식들을 한 순간 깨어 버리는 것.
그 상황들이 아들을 왕따로 만들었던 멍청이들에게 해 줄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랜스는 모든 옷을 벗고 풀장으로 다이빙을 합니다.
(가식의 옷을 벗어 던지고 나서야 정말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아들이 생전에 한 얘기가 있습니다.
"다이빙은 스포츠가 아니야. 다이빙은 떨어지는 거예요."
마지막에 모든 가식의 옷을 벗고 랜스는 추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제서야 그런 가식의 옷을 벗어 버린 랜스는 후련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아들의 친구 앤드류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영화를 봅니다.
ado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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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솔한 고백(?)이 담긴 인상적인 감상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