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스쿨>, 2014
연출 김석정
출연 백서빈(정식), 하은설(혜나)
언젠가 인터넷 블로그에서 본 글귀가 있다. ‘영화는 각기 다른 색깔의 꽃이기도 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 요지의 문장이었다.
<좀비스쿨>을 보며 퍼뜩 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든 또 하나의 잡생각.
필름이 사라진, 이제는 디지털 방식으로만 영상처리가 되는 영화가 대체 감독에게, 영화를 만드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다.
필름 조각 하나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가하던 예전의 영화들을 우리는 단지 소비했었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좀비 스쿨>은 어디에선가 영상클립을 빌려오고 만들어진 화면들이 난무한다.
더 나아가 영상 밖에서 입혀진 ‘멋지고 장엄하고 그래서 비장하며 의미가 깊은’ 음악들이 소비,
아니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제 영화는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점이 단순 소비함으로써 낭비되는, 그냥 영상기계매체를 통한 '영상덩어리'인 것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적응되지 못한 아이들이 보내진 섬 안의 칠성고등학교는 이제 또 다른 '섬'이 된다.
감독이 설정한 '좀비'라는 기존 영화적 작법은 사회비판과 교훈의 시소를 탄다.
감독은 학교 교감의 입을 통해 설파한다.
구제역의 피해는 인간이 입기도 했지만 실질 돼지들이 희생양이다.
그래서 억울하게 인간에 의해 살육된 돼지들의 원혼이 '미친 돼지'로 나타나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앙갚음을 한다.
외부로 연락은 '절대' 되지 않고 오직 싸움짱인 정식만 살아남는다.(스포일러라도 할 수 없다.
관객 모두 이 예측을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했을 것이다.
더구나 좀비가 된 혜나는 너무 뜬금없다. 혜나 버전의 <웜 바디스Warm Bodies> 였으므로)
이미 좀비로 변한 철기(배민수 분)를 철장에 가두고 그것을 끌며 황량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어선을 직접 운전하는 정식, 그냥 역시, '뜬금없이 비장하고 멋지다').
꽃은 그 형태, 색깔, 향기는 전부 다르다. 어떤 꽃이 예쁘고 밉기 때문에 함부로 꺾어 버릴 수는 없다.
쓸모없다고 해도 살아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로써 소중한 것이니까.
앞서 영화가 각각의 꽃이라면 영화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떤’ 것들의 유동, 곧 생명체를 우리가 관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인간이나 여타의 생물처럼 구체적인 유동체로 살아나려면 불려질 수 있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
시인 김춘수가 꽃에게 생명의 '진정한' 의미망을 준 것처럼.
좀비들의 육체처럼 사정없이 찢겨 나열된 영상의 조합,
그래서 <좀비 스쿨>의 퍼즐조각은 자기 이름이 없는 누군가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을 보는 관객들은 불편하다 못해 그것이 안쓰럽기만 하다.
심증 하나.
감독은 <좀비 스쿨>의 이야기 구도를 영화에서 사용된 세 곡의 OST에서 가져온 듯싶다.
그래서 그 음악을 영상에 입히고 교장의 음악으로 사용한 것은 그 과용 내지 오용의 측면이 있다.
디지털에 입혀진 클래시컬한 음악의 소음,
<좀비 스쿨>에서처럼 쓰인다면 어떤 훌륭한 곡이라도 소음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식과 혜나, 철기의 등장에서 쓰인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 for strings」.
이 곡은 교장실에 울려 퍼지는 곡이기도 하다.
교장이 키우는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음악은 헨델의 「하프시코드 제2권의 4번의 3. ‘사라방드’」.
엔딩곡은 3호선 버터플라이가 부른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ZOMBIE」.
마지막 곡을 들으면서 감독은 아마도 이 곡에서 강한, 나름의 영감을 받았을 거라는 '강한' 억측이 들었다.
세 곡 모두 죽음이란 단어를 연관시키는 곡이기도 하다(이전의 다른 영화에서 쓰인 장면들을 보면 새삼 알 수 있다.
헨델의 「사라방드」는 큐브릭의 1975년 작 <배리 린든Barry Lyndon>에서 장엄하지만 구슬픈, 그래서 쓸쓸한 느낌을 준다.
(사론, <배리 린든>에서는 <해피엔드>의 서민기(최민식 분)의 테마이기도 한 구슬픈 피아노곡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E-FLAT 작품번호 100」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좀비스쿨>을 구상하고 연출하기로 한 감독이 서구의 죽음과 관련한 ‘좀비’라는 주술적 코드를 가져왔다면,
그래서 이것에 잘 맞는 음악을 찾고자 했다면, 억측은 그래서 심증이 된다.
두서없이, 그래서 잡설처럼 <좀비 스쿨>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가 꽃이라는 이름의 다종다양한 개개의 생명체라면 감독은 그 생명체를 만드는 '전능한 神'이 된다.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데 이렇게 퍼즐조각을 맞춘다면 그 생명체의 모습은 어찌 되겠는가.
김석정 감독의 건승을 빌 뿐이다.
스타니~^^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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