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 표현의 과묵함과 모호함이 주는 매력
배를 타느라 가족과의 관계에서 담을 쌓고 살았던 마르코(뱅상 링던)는 다 큰 조카가 성적인 학대로
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른 사실을 알게 된다. 여동생의 경제적인 난관을 돕기 위해 차를 포함한
재산을 처분하면서, 조카를 망가뜨린 악인에 대한 복수를 꾀하지만, 그 과정에서 탐해서는 안 될 여자를
탐하게 되고, 도모하는 일이 꼬이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대사를 최대한 줄인 과묵함,
설명을 생략한 서사와 시간을 넘나드는 장면의 혼조로 인한 모호함,
붉은 색이 강조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표정에서 드러나는 배우들의 감정적 절제감
과 같은 것이다.
대사를 아낀 과묵함과 배우들의 절제된 표정 연기는 암울한 분위기의 영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몸담고 있는 인간들의 욕망과 비극을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보여준다.
소란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심심할 정도로 조용한 극에,
있는 듯 없는 듯 드문 드문 들려오는 음향은
배우들의 억눌린(?) 표현과 특유의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몽환적인 영상과 맞물려 오히려 긴장과 흥미를 배가시키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
생략된 대사와 배우들의 절제된 표정 연기는
누벨바그 운동을 촉발시켰다고 여겨지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브레송의 정적인 특성을 연상시킨다.
성노예가 되어서도 마치 그 욕망에 쇠놰된 듯 벗어나지 않거나 못하는 여성을 드러내는 이 영화의
감독 고다르의 초기작을 닮은 여성 혐오적인 경향,
굵직한 서사에 끼어드는 에피소드 식 줄거리,
야외에서 가능한 조명으로 촬영한 듯한 흐린 이미지,
장면이 급격하게 바뀌는 편집 등으로,
(즉흥적인 대화같은 것이 배제된 것으로 보이는 것만 빼고는 )
영화는 대체로 두드러진 프랑스의 과거 누벨바그 스타일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된다.
복수를 계획하고 표정만으로도 냉정함을 뿜어내던 마르코가 여자를 탐하는
'방종'에 빠지면서,
(배를 타면서 연을 끊고 스스로 그것으로 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시금 주변인들의 '부조리'에 함께 휩쓸리게 되는
소위 '방종'과 '부조리'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과거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쏟아져 나온 비슷한 류의 평작들의 역효과로 인해 사라져 버린 그 흥분과 기이함,
상업적으로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기 시작했던
그 '방종'과 '부조리' 의 정서가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지금의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인상적으로 되살아나는 듯 하다.
마르코를 방종에 빠뜨린 라파엘(키아라 마스트로얀니)이라는
'유혹적인 여자',
마르코의 조카를 성노예로 학대하는 인물 에두아르 라포트(미셸 쉬보르)라는
'성퇴폐적인 상류층' 과 같은 반사회적인 개인들을 다루며,
대사를 줄인 '비 발성적' 인 '시각적인 효과' 에 무게를 두면서,
부조리한 인간의 악이라는 본성에 맞닥뜨리게 하여 무기력한 환타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은 완전히 '누아르' 영화이기도 한 듯 싶다.
한편,
영화를 흥미롭게 지켜본 후, 다소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피해자로만 생가했던 조카의 행각을 뒤늦게 알게 된 마르코의
"내가 이혼하기를 잘 했지, 너나 네 딸로 내 자식들이 몹쓸 것을 옮지 않을테니.."
이 대사가,,
과거의 소위 '필름 누아르' 가 파시즘이라는 정치적 악을 제거하기 위해 투쟁하는 인류의 사회적 이상에 역행하면서,
개선하거나 교정할 수 없는 인간의 악으로 인해 범죄를 양산시키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반사회적인 개인들과 그로 인한 불안을
전염되는 '풍토병' 처럼 묘사한 것을 떠올리게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영화는
단순히
'누벨바그'의 잊혀진 흥분과 기이함을 되살렸다고 해서, 또는 '누아르'이라서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영화 자체의 특별한 서사와 분위기, 배우들의 훌륭한 표현과 그 예기치 못한 결말만으로도
흥미롭게 음미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멋진 영화다.
추천인 1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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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몰입하면서 즐감했슴다. 영화를 보면서 머리로 느꼈던 감상을 남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건위천님 리뷰를 읽고 나니 영화가 체계적으로 다시 몸에 쏘옥 흡수가 된 느낌이라 정말 좋습니다. 근데, 여긴 일반회원들이 감상기 올리는데 같은데, 건위천님 리뷰는 흡사 전문가 리뷰처럼 읽혀지네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담에 또 들리겠습니다 ㅎ
건위천님 후기처럼 영화가 조용하면서도 은근 몰입이 되더라고요+_+ 예술영화같은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답니당. 이런 식의 영화가 바로 말로만 듣던 누벨바그였군요. 덕분에 느와르에 대한 개념도 정리가 잘 된 것 같아요. 후기 즐독했사와요. 감사합니당!
같이 본 사람은 영화가 지루하다 그러는 통에ㅜ.ㅜ;;; 안타까웠는데, 공감가는 리뷰를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건위천님 영화에 대한 지식두 대단하신 거 같구요^^;; 잘 읽고 가여~
유익한 리뷰네요~ 도움받고 갑니닷^^
마르코의 방종으로 해석을 하셨군요... 건위천님의 글을 읽어 보니 그렇게도 생각되어 지네요.
저는 마르코의 복수의 하나였다고 생각했는데... 조카를 그렇게 만든 1인인 에두아드의 정부였던 그녀에게 일부러 접근했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