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오직 이순신과 해전씬만 남았다
'명량'은 CJ 엔터테인먼트에서 올 여름 성수기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대작입니다. 순제작비 150억, 총제작비 190억원이 들어간 '명량'은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명량대첩은 한산도대첩, 노량대첩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불리우는 해전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배경으로하여 제대로 성공한 영화가 없었음을 감안했을 때, '명량'이 명량대첩의 긴박감 넘치는 어떻게 스크린으로 담아냈을지 상당히 궁금하더군요. 이미 7월 29일 개봉해서 연일 새로운 흥행사를 쓰고 있는 작품인데요, 전 영화 개봉 1~2달 전에 영화 편집본을 모니터링하고, 개봉 첫 날 영화를 다시 관람했습니다. '명량'의 일정 부분 성취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만듦새는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됩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입니다.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이게 됩니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사실 이순신은 세종대왕에 버금갈 만큼, 우리나라 위인 중 선호도가 높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상전투를 스크린으로 담아낼 수 있는 CG 역량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데다, 인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너무 가볍게 혹은 너무 무겁게 그려질 수 있어 많은 제작자들이 선뜻 다루지 못한 소재이기도 하죠. 이미 2005년에 남북한 갈등, 이순신이라는 소재를 함께 버무린 영화 '천군'이 개봉하기도 했으나, 80억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CG와 지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줄거리로 인해, 114만명의 관객에 그치는, 뼈아픈 흥행실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1977년 '난중일기', 2004년 '천군'에 이어 '명량'이 세번째 작품인데, 이 영화는 명량 대첩을 스크린에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만든 작품으로 보입니다.
'명량'의 해전씬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명량대첩을 재현하기 위해 실제 바다 위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수많은 배를 직접 조종하여 해전을 스크린에 담아낸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 영화사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그만큼 과감한 선택이었다는 뜻인데, 실제 바다가 아닌, CG로 바다를 재현해낸 '해적'에 비해 스펙타클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영화 속 바다가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는 한층 더 살아있습니다. 사실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영화로 스케일 큰 바다 영화에 익숙해져있는 관객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명량'이 일궈낸 성취는 실로 대단한 수준입니다.
'명량'은 '최종병기 활'을 연출하기도 했던 김한민 감독의 인장이 제대로 찍혀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캐릭터와 배경 소개에 절반 정도의 러닝타임을 할애한 후 전투 장면으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줄거리 구조나, 유머보다는 진지한 영화의 분위기로 이끌어가고 있는 등 많은 부분에서 '최종병기 활'과 '명량'은 닮아 있습니다. '명량'도 128분의 러닝타임 중 전반부 1시간은 영화 속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고뇌와, 명량대첩 직전 일본과 우리나라 수군의 상황 등 배경 설명에 할애하고 있으며, 영화의 주요 볼거리를 후반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하이라이트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고, 지루한 편이네요. (그래서 전 '최종병기 활'도 사실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량'을 보기 전에는 이순신(최민식) vs 구루지마(류승룡)의 대결이 그려질 줄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 영화는 전적으로 이순신의 영화입니다. 최민식씨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순신을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꽤 인상적이지만, 그 외 조연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리고 있는데요. 류승룡씨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제대로 내뿜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툰 일본어 실력 때문에 영화에 제대로 몰입하기 힘들 정도군요. 조진웅, 진구, 이정현씨는 연기력과 인지도를 갖춘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비중 자체가 크지 않고, 몇몇 영화적 설정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채 버려지는 듯한 인상입니다. 특히 이정현씨는 '파란만장', '범죄소년'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라, 이번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군도'의 윤지혜, '해무'의 한예리 등 올 여름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의 다른 홍일점 배우들이 보여준 카리스마의 반에 반도 못보여주고 있어서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만족도는 기대 이상으로 높은 것 같은데, '명량'의 영화적 완성도가 높아서라기 보다는, 이순신이라는 위인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해전씬이 기대이상으로 좋았다는 점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잘만든 영화라고 오인할 여지가 꽤 클 것 같은데, 확실히 잘만든 영화는 아니네요. (그 때문에 평론가 평점과 관객 평점의 괴리가 상당하군요 ㅠ) 연일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데, 영화 '명량'이 일궈낸 일정 부분 성취는 인정하지만, 제 개인적으론 올 여름을 겨냥한 Big 4 영화 중 가장 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딱 이순신과 해전씬만 남은 작품, '명량'입니다.
* 이순신 장군의 아들 역할을 연기한 권율씨는, 후반부에서는 시종일관 이순신 장군을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연기밖에 못하고 ㅠㅠㅠㅠ 권율씨가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감독이 캐릭터 활용을 잘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고경표씨는 대사 한마디 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특별출연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SNL 속 억울한 표정이 계속 겹쳐서 몰입이 잘 안되더군요.
* '명량'에 이어 '한산', '노량'까지 3부작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미 '명량'에서 보여준 해전씬을 뛰어넘는 장면들을 후속작에서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파죽지세의 흥행세를 봤을 때는 속편을 만들것도 같은데 과연....??
가끔 사람들의 평과는 달리 승승장구하는 영화들이 있지요... ^^
물론, 전 재밌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