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순간 - 네브라스카
우리는 하루 평균 얼마만큼의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일일히 셀 수도 없고, 어림잡기에도 그 양을 가늠치 못할 정도로 작고 큰 거짓들로 빼곡히 이뤄진 일상생활들. 그 의도가 어찌됐든 우리에게 학습된 ‘거짓말’의 의미는 그저 ‘나쁜 것’으로 치부됨에도 불구하고, 삶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처한 상황들을 모면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한끼도 거르지 않고) 밥먹듯 거짓말을 해댄다. 현실(사실)을 살고 있는 동시에 그것들을 거짓으로 채우고 있는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함 그 자체이다.
삶의 단면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영화에 있어서도 거짓말은 심심찮게 등장하다 못해, 시나리오를 쥐락펴락 하는 하나의 훌륭한 장치로 자주 사용되는 단골손님이다. 대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짓말은 인물간의 갈등을 야기하며, 드라마틱한 극의 전개를 위해 사건과 인물들을 아우르며 서로 엮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험에 빠지고 사랑에 나누고, 희노애락의 모든 주제를 담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란 재료의 전지전능함이다.
영화 ‘네브라스카’에도 어김없이 거짓말은 등장하며, 그 무게 역시 가볍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 만들어내는 통쾌함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당첨되지 않은 가짜 복권을 가지고 백만장자가 되었다 믿는 치매 노인인 아버지(우디)와 함께 밤새 운전해도 꼬박 며칠이 걸리는 네브라스카까지 동행하게 된 아들(데이빗). 캐릭터들로만 유추해도 애증 관계에 있는 부자의 관계 회복을 위한 로드무비일 것만 같은 네브레스카는 예상대로 소소한 우여곡절을 겪는 시간들로 서로에게 상처와 치유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거짓말은 바로 그 회복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기제로 활용되며, 마지막에 다다라 더욱 그 역할은 확장된다.
에어 프레셔를 실은 멋진 트럭을 타고 옛 동네를 천천히 달리는 우디. 1등의 일확천금 대신 달랑 기념품 모자만을 받아들고 나온 그들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리 없다. 오직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디와 데이빗, 그리고 스크린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들뿐. 둘의 거짓말에 속아 어안이 벙벙한 마을 사람들. 인사를 건네는 우디를 멍하니 바라보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통쾌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이 거짓말은 우디를 멸시했던 친구들에게 전하는 복수이자, 우디를 빼닮은 ‘루저’ 데이빗의 배려의 미쟝센이며,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상상했던(예상했던) 결말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옛 마을을 앞에 두고 운전대를 교대하며 서로 교차되는 우디와 데이빗의 모습은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영화적 찰나이다.
같은 ‘말’임에도 사실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거짓말이고, 좋으나 싫으나 우리 곁에 늘 함께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용과 주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용인되는 대상과 범위 역시 달라지겠지만, 데이빗의 거짓말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움직일 수 있는 거짓말이라면 이 세상 누구에게나 마땅히 쓰여질 수 있기를. 때론 삶은 거짓말과 같기에.
monsterchoi
댓글 0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