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Bleak Night, 2010) - 우리들의 일그러진 우정
"친구 아이가?".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2001년작 <친구>의 대사입니다. 농담도 하고 투닥거리면서 서로 장난도 치고, 싸우다가도 '으리' 하나로 금방 화해하는. 남자들의 우정이란 그런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오늘 씹어볼 영화 <파수꾼>은 남자들의 우정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어제목인 'bleak night'는 '황량한 밤'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 자체도 황량하고, 보고 나서도 참 기분이 황량해집니다. 조목조목 씹어보겠습니다.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절친 3인방입니다. 모여서 캐치볼도 하고 서로의 집에서 잠도 자면서 친하게 지내지요. 어느날 여고생 세 명과 짝을 이뤄 여행을 떠난 세 사람. 즐거운 여행도 잠시, 희준이 좋아했던 여학생은 기태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 날 이후 기태와 희준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학교 짱이었던 기태는 희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동윤은 그런 기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결국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기태와 동윤의 사이마저 멀어지고 맙니다.
영화는 죽은 기태의 아버지(조성하)의 시점에서 출발하여 기태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갑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기태,동윤,희준 각각의 시점에서 사건을 전개하고 세 사람 모두의 이야기를 골고루 전달합니다. 세 사람 모두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실은 영화를 보면서 너무 놀랐습니다. 너무 리얼해서. 진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놓은것만 같아서. 건조하고 담담한 연출과 너무나도 리얼한 배우들의 연기가 한몫했습니다. 서슬퍼런 눈으로 무서운 욕을 내뱉은 기태 역의 이제훈씨 연기가 기억에 남네요. 너무 무서워서.무엇보다 악의도 고의도 없었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와 불신으로 등을 돌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잘 표현이 되어있습니다.
학교 짱인 기태는 내뱉는 말도 거칠고 무자비하게 폭력도 행사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외롭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누구보다도 외롭습니다. 어머니 없는 가정에서 외롭게 자란 그는 '관심과 우정'이 절실합니다. 거느리는 졸개는 많지만 진정한 친구라 믿었던 건 동윤뿐. 그러나 오해와 상처로 기태에게 벽을 쌓아버린 동윤은 기태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었어. 너만 없었으면 돼.'
글을 쓰는 저도 그랬고,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친한 친구와 싸웠던 경험이 생각난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절친 사이에 격의없이 막 대하고 막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니까 서로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하죠. 서로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영화는 가장 상처를 많이 준 기태가 실은 누구보다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물임을 보여주고,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을 넘어갔을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다 보고나서 기태에게, 동윤에게, 희준에게 공감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황량해지는 그런 기분을 느꼈네요. 싸우면서 자라는게 친구라지만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 친구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들이 극찬하신만큼 재밌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곁에 있는 친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던 <파수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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