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칼날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사실 전 작년 여름에 영화 '방황하는 칼날' 편집본을 블라인드 시사회로 미리 관람했었습니다. 2013년 6월에 관람했으니, 근 1년만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네요. 당시 첫 관람할 때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방황하는 칼날'이라는 원작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영화에 대한 기본정보를 거의 모른 채 관람했었는데 꽤 만족스럽게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나서 한참 뒤, 드디어 '방황하는 칼날'이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게되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버려진 동네 목욕탕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여중생 수진(이수빈). 아버지 상현(정재영)은 하나뿐인 딸의 죽음 앞에 무력할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현에게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이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문자 속 주소대로 찾아간 그 곳에서, 소녀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딸의 동영상을 보고 낄낄거리고 있는 철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순간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 상현은 또 다른 공범의 존재를 알게 되고, 무작정 그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한편, 수진 살인사건의 담당 형사 억관(이성민)은 철용의 살해현장을 본 후, 상현이 범인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4/17 개봉할 영화 '한공주'와 비슷한 구석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한공주'가 어떤 사건 후 남겨진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방황하는 칼날'은 여중생 딸을 성폭행으로 잃은 아버지의 사적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사회, 법제도가 누구를 향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범인을 좇는 아버지(정재영)과, 그를 좇는 형사(이성민)의 이야기로 이어가고 있는데,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스릴 넘치는 영화라기보다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 '방황하는 칼날'을 원작으로 하다보니, 이야기가 크게 삐끗하지 않고, 비교적 탄탄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 역할을 가슴 절절하게 소화해낸 정재영씨와, 그를 잡아야하는 형사 역할의 이성민씨의 연기 조화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정재영씨의 연기는 불과 얼음을 오가며 무시무시한 느낌이라면, 이성민씨는 시종일관 영화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인데, 서로의 장점은 돋보이면서 단점은 보완해주고 있는 구조네요. 서준영, 이수빈, 이주승, 최상욱 등 상대적으로 어린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히 좋은데, 눈빛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이주승씨가 상당히 눈에 띄네요. (이번달에 '셔틀콕' 개봉도 앞두고 있는데, 이 작품 또한 상당히 기대중입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영화인데, 일부 단점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범인을 좇는 아버지(정재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그를 쫓는 형사(이성민)의 관점으로 바뀌는 스키장씬에서 이야기가 다소 방황하는 듯 합니다. 원래 영화가 스피디한 느낌도 아니고, 122분의 러닝타임이 짧은 상영시간도 아닌데, 스키장씬에서 과도하게 늘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단점 외에는, '방황하는 칼날' 캐릭터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 촬영 등 장점이 더 많이 부각되고 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운좋게 무대인사 상영 스케줄을 찾아 예매해서,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방황하는 칼날'을 연출하신 이정호 감독님과, 영화에 출연하신 정재영, 이성민, 서준영, 이주승, 이수빈양까지 함께 참석해주셨습니다. 상영 전 배우분들의 무대인사를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작품 자체가 워낙 좋아서 영화가 끝난 뒤 묵직한 여운이 남아 더욱 좋았습니다. 사실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지라, 오락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고, 보고나서 오히려 기분이 다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거우면서도 묵직하고, 영화가 전하려는 메세지 자체가 워낙 인상적이라, 한번쯤 보시기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우리의 법은 누구를 향해야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입니다.
- 작년부터 올해까지 꽤 다작하고 계신 정재영씨. '우리 선희', '열한시',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까지, 이 중 호불호가 갈렸던 작품도 있지만, 제 개인적으론 정재영씨 작품들은 넷 다 인상적이었는데요. 그의 다작 종지부를 찍을 '역린'은 어떨지...
- 제가 작년에 모니터링했을 때보다 여운이 보다 더 깊게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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