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0
  • 쓰기
  • 검색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간단 후기

소설가 소설가
2185 5 10

스크린샷 2024-05-07 113426.png.jpg

 

 

 

최근 영화를 보면서 경험과 직관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상 즉 영화를 본 뒤 내 속에서 자기화함에 있어 반드시, 라고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이 두 가지였거든요. 

이게 적절할 설명이 될 예일지는 모르겠으나, 제 주변 까마득한 후배 중에 특정 일본의 추리 작가를 작가 중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후배가 언급하는 작가는, 일본 내 평에서 중위권 정도 작가입니다. 아쉽게도 이 까마득한 후배가 읽은 글 편 수는 통계를 내기도 민망한 100편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 후배에게 1천 편을 읽어도 그 작가가 최고라고 생각하면 그건 너의 성향, 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직관과 경험으로 언급한 두 단어는 치환하면 "시간이 만들어낸 세월"과 "그 세월에 녹아든 감상 편수"가 훌륭한 내적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이들이 적절하고 빠르게 기능하는 "총합의 평균"으로 해석 가능할 겁니다. 그러하기에 특정에 편향한 영화에, 예를 들면 스타일은 좋지만 서사가 없다거나, 서사는 훌륭하지만 난해하기만 하다거나, 유명 배우가 출연해 화제가 만발하지만 영화는 형편없다거나 하는, 아무리 몇몇이 대단한 점수를 준다고 해도 총합의 평균에 대자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를 말하며 이렇게 니쥬가 길다는 건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해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기에 깔고 가는 잡설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네. 현재 하마구치 류스케는, 일본 최고의 작가주의 감독이자 향후 세계를 대표할 거장으로 자리매김할 게 분명한 감독입니다. 지금도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 물론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은 더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즉 위에서도 적은 총합의 평균을 내기에는 약간은 더 창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 영화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떤 감흥이나 분위기, 또는 상황이 매개해 만들어진  즉흥적인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고립되다시피 한 특정 마을을 방문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거기서 떠올린 어떤 즉흥적인 착상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결과물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뭐랄까, <해피 아워>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해 탄탄함의 정도가 덜했다고 할까요. 

(만약 위 문장을 공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랑 영화 보는 관점이 비슷하신 겁니다.)

 

유명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시나리오를 잘 쓰는 작가이자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다만 이러한 최고 같은 단어를 쓰자면 늘 신중해야 하는 게, 제가 아무리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해도 그 해에 개봉하거나 스트리밍한 영화를 다 보기에는 물리적인 무리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극장 관람 영화 편수를 6편 정도라고 가정하면, 1년 동안 볼 수 있는 영화는 2,200편 정도이잖아요. 그런데 "가장" 같은 단어를 쓰려면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같은 바운더리의 제한을 두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거든요. 이 말은 정정해 드리고 싶은 게, 돋보이는 작가이자 감독 정도는 어떨까. 하마구치 류스케. 

다만 아직은 진행 중인 감독이라 평가를 내리는 건 조심스럽죠. 향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이라. 그렇지만 저 역시 매우 좋아하고 어떤 영화라도 지지해주고 싶은 감독인 것은 사실입니다. 

사담이 길었네요. 

 

영화는 -"그럼 사슴은 어디로 갈까?"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작은 산골 마을에 글램핑장 설명회가 열린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타쿠미’와 그의 딸 ‘하나’에게 소동이 벌어진다.-라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산골 마을에 글램핑 장을 만들려는 침입 세력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악이 제거되었을 때 악은 존재하는 않는 것으로, 단순 해석 가능한 영화입니다. 반면 산골 마을을 타쿠미의 딸인 하나로 투과해 보면 순수한 타쿠미에게 틈입하는 도시 세력 즉 문명에 대입해 자연과 인간을 되돌아 보는 자아 성찰적인 영화로 바뀝니다. 

틈입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명하는 제목과 연계한 영화의 마지막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흥을 넘은 감명으로 새겨지지 않았을까. 

 

다만 <드라이브 마이 카>가 깔아간 서사나 이의 정립에 비하자면 밋밋하고 단순했던 게 사실입니다. 바냐 아저씨. 연극의 대사와 이를 통한 액자식 구조를 투영한 것도 모자라 액자의 바깥, 관객에까지 영향을 미친 완벽했던 영화, 즉 이에 비하자면 성찰의 정도나 무와 유, 문명과 비문명, 자연과 개발 등 대립을 통해 대조하고 대유하며 사유에 다다르는 과정은 분명 기존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 깊이감에 있어서는 '준비가 잘 되었다'기보다는 즉흥적이지 않았던가. 

 

물론 이 영화를 통해 풍경 즉 자연과 인간, 그리고 소리와 말의 있고 없음을 통한 대비가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은 탁월했습니다. 역시 여기서 앞 문장을 제한하거나 어느 정도 부정하는 부사인 "다만"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결론하자면 바로 "대사의 없음, 즉흥적, 준비성" 등이겠지요.

즉흥적이었을지 모를 영화의 주제 즉 착상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 즉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되 하마구치의 장점이었던 대사를 최대한 자제한다, 그리고 완벽했던 영화의 상황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면 최대한 준비하지 않음으로 여백을 만들어낸 연출한다, 같은. 그렇지만 제가 이렇게 표현했다손 할지언정 이 영화가 다른 영화에 비해 못 하느냐? 절대 아닙니다. 하마구치의 영화를 보아왔던 입장에서 적은 기술이지 타 감독 즉 타 영화와 비교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껏 적은 내용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기고하는 글이라면 이렇게 표현하겠죠. 

 

절대적인 자연과 한낱 스치기도 어려운 미미한 인간의 대비를 악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대유해 고도로 절제한 영화다, 라고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별점 다섯이라고 기준하면 이 영화는 저에게 둘 반 정도. 즉 기존 하마구치 영화에 비해 아쉽다는 거였지, 이 영화가 절대로 영화적으로 낮잡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러하기에 조금 편하게 본 하마구치 영화였습니다. 

 

추천하느냐고요? 당연합니다.

이런 영화는 보고 저장해 두었다가 특정 경험이나 직관이 차곡차곡 내재화하여 숙성될 때 자기화시킬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거 최고야, 하고 당당히 말하는 순간이 타인에게 무식하거나 아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때, 그때 말이죠. 자기화하여 해석이 필요한 반드시 보았으면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하마구치 류스케, 정말 영화 잘 만듭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도 기대하게 되는 감독임에는 분명합니다. 총합의 평균에 대비해 제가 가장(제가 위에서 썼던 최고나 가장 같은 말의 의미를 되짚어 주시면 의미가 깊게 이해되실 겁니다) 좋아하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현 시점 일본 투 톱 감독이 아닐까.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셜록
    셜록
  • Sonachine
    Sonachine

  • 이상건

  • 진지미
  • golgo
    golgo

댓글 10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원래 뮤직비디오로 만들다가 즉흥적으로 기획을 바꿔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온 즉흥성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13:05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golgo
아하. 그렇군요. 정보를 찾아보지 않기를 잘했네요.
영화는 정말 잘 만듭니다. 이 감독에게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13:22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제작 과정 언급한 글이에요.^^
https://extmovie.com/movietalk/91266069
13:25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golgo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쓴 오늘에는 약간은 아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늘 좋은 글 올려주어서 감사해요.
14:03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진지미
감사합니다. 더 정성을 들였어야 했나, 살짝 반성 중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14:04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이상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은 밤인데 하루 마무리 잘하십시오.
23:38
24.05.07.
profile image
소설가 작성자
Sonachine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일 가득하십시오.
23:39
24.05.07.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림 시나리오' 시사회 당첨자입니다. 익무노예 익무노예 40분 전13:59 105
공지 제4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개막식 행사에 초대합니다. 7 익무노예 익무노예 4일 전13:34 1628
HOT 케빈 코스트너 '호라이즌' 첫 로튼 20% 1 NeoSun NeoSun 11분 전14:28 110
HOT CGV 주간 굿즈 실물 사진(매드맥스,하이큐,별처럼빛나는너에게)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2분 전14:07 145
HOT <반지의 제왕> 신작, 골룸이 주인공이 된 배경 2 카란 카란 36분 전14:03 311
HOT 오늘의 쿠폰소식은 6개! 월요일 화이팅입니다 아자아자! 4 평점기계(eico) 평점기계(eico) 5시간 전08:42 1456
HOT 윤아가 올린 칸영화제 포토슛들 2 NeoSun NeoSun 1시간 전12:47 498
HOT <창가의 토토> 실제 주인공을 알아보자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2:35 346
HOT 77회 칸 영화제 현재까지 스크린데일리 평점 4 얏호!!! 2시간 전12:14 822
HOT 케빈 코스트너 '호라이즌' 칸 프리미어 리뷰들 호... 5 NeoSun NeoSun 3시간 전11:09 758
HOT 애냐 테일러 조이 칸 2024 포트레이트 추가 / '퓨리오... 1 NeoSun NeoSun 3시간 전10:40 504
HOT '메갈로폴리스' 칸 프리미어 기립박수 7분 기록 1 NeoSun NeoSun 4시간 전10:23 592
HOT Megalopolis ... 변사 (Narrator ??) 방식을 쓴다는 썰 4 totalrecall 4시간 전10:19 492
HOT 이토 준지 버전 <던전밥> 12 카란 카란 4시간 전10:13 1563
HOT <더 에이트 쇼> 새 포스터 공개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9:48 964
HOT CJENM이 올린 칸영화제 윤아 X 류승완 감독 투샷 1 NeoSun NeoSun 5시간 전08:58 2337
HOT 더 퍼스트 슬램덩크 디즈니 플러스 공개(독점) 6 GI GI 6시간 전08:28 1426
HOT 엘리사 슐로트-맥스 리에멜트-알마 하순,히틀러 음식 감별사... 2 Tulee Tulee 6시간 전08:06 261
HOT 코스타 가브라스 신작 드라마 <라스트 브레스> 첫 이... 1 Tulee Tulee 6시간 전08:05 496
HOT 루시 헤일,심리 스릴러 <마이 원 앤 온리> 출연 1 Tulee Tulee 6시간 전08:04 256
HOT 변요한 신혜선 그녀가 죽었다 무대인사 코엑스 3 e260 e260 6시간 전07:56 612
HOT 호러영화 여러편 6 Sonachine Sonachine 7시간 전07:23 570
1137259
image
NeoSun NeoSun 11분 전14:28 110
1137258
image
NeoSun NeoSun 16분 전14:23 79
1137257
normal
접속영화여행 16분 전14:23 84
1137256
image
접속영화여행 17분 전14:22 100
1137255
image
NeoSun NeoSun 23분 전14:16 98
1137254
image
golgo golgo 24분 전14:15 136
113725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0분 전14:09 131
1137252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2분 전14:07 145
1137251
image
카란 카란 36분 전14:03 311
113725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7분 전14:02 134
113724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9분 전14:00 117
1137248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40분 전13:59 73
1137247
normal
익무노예 익무노예 40분 전13:59 105
1137246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3:13 318
1137245
image
샌드맨33 1시간 전12:55 361
1137244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2:47 498
1137243
image
drdox 1시간 전12:47 385
1137242
image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2:42 229
1137241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2:35 346
1137240
image
drdox 2시간 전12:31 197
1137239
image
drdox 2시간 전12:26 227
1137238
image
drdox 2시간 전12:22 348
1137237
image
얏호!!! 2시간 전12:14 822
1137236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1:53 307
1137235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1:09 758
1137234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0:47 272
1137233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0:40 504
1137232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23 592
1137231
image
applejuice applejuice 4시간 전10:22 850
1137230
image
totalrecall 4시간 전10:19 492
1137229
image
카란 카란 4시간 전10:13 1563
1137228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09:48 964
1137227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09:41 760
1137226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9:38 535
113722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09:05 500